잠이 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도 까맣게 잊을만큼 여지껏 관성으로 살아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루는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고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짓눌리며 살았다. 모두가 그 압력 속에서 살고있고, 사람이라면 그 압박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지내온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생활패턴, 비전 없는 삶, 목적 없이 흐르는 시간들, 나약한 내 자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 내 모습이 최선이고 최대한의 노력을 끌어낸 한계라고 여겼을 뿐이다. 전부는 커녕 일부분 조차 똑바로 쏟아 붓지 못하고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제멋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난도질 하는 자들, 부당한 사회, 주변의 이기주의, 배신이나 갈등... 무엇이든지 탓하고 원인을 돌리기에는 쉬웠고, 자기파괴적이었으나 한동안 그곳에 빠져 집중했다.
결과는 자책으로 인한 자기혐오 혹은 타인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지쳐있었고 점차 모든 것으로부터 염증과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으로의 침전, 고독만을 간절히 원했으나 그 어느 곳에도 고요한 구원의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거리에 취객도 차량도 없는 월요일의 깜깜한 새벽, 시계는 02:25 나타내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려 커피를 산 뒤, 한번에 들이킨 후 집에서 가지고 나온 500ml 물병을 한 손에 든 채,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담배도 제대로 못끊고 하루 반갑은 펴왔고 전 날,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였으며 평소에 그나마 하는 운동들 조차 지구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탓 이었을까, 500m 즈음을 달렸을 무렵 오른쪽 무릎이 어긋나듯이 덜걱거리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왔다.
마른 체형임에도 일주일에 한두번 5km 겨우, 대부분의 경우 3km도 채 못 뛰었고 흡연까지 좀 많이 한 날에는 1km 조차도 숨을 헐떡였던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힘겨울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그러나 더 이상 여우와 신포도 이솝우화처럼 목표한 바의 근처도 못 가보고 자기위안 삼는 것이 싫었고 핑계 대는 것도 질렸다. 내 진짜 한계가 어디인지, 정말 이것 밖에 안되는지 궁금했다.
오늘 생각한 목표가 있으면 그 자리에 쓰러져도 이루어 보겠다. 라는 마음으로 다짐하며 마음을 가라앉히자, 이상하게도 무릎에 통증이 사라지고 서서히 머릿 속에 진공상태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3~4km 지점... 5km 에 도달하자 25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8月의 어마어마한 습도에 이미 상의 절반 이상이 땀으로 흥건했다. 머릿 속에 '04:30 분 까지는 무조건 뛴다' 라는 강력한 목표의식과 함께 지나간 기억이 하나 둘씩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존이었다면 땀으로 흥건한 옷이 찝찝하고 운동도 충분히 되었다며 멈췄을 이 순간, 멈추지 않고 러닝을 지속하자 원망스러웠던 순간과 후회되던 선택 등이 떠올랐다. 생각들을 뿌리치려 러닝에 집중하면 할 수록, 스탭과 골반의 움직임 등에 집중할 수록 마치 명상을 하듯이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과 생각이 쏟아져 나왔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생각, 사회 통념에 맞는 보통의 이성, 내 개인적 경험으로 인한 생각들이 첨예하게 맞물리며 주변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 속은 혼곤했고 호흡과 내 몸의 근육은 총체적인 전쟁을 겪고 있을 뿐이었다.
...
수 시간에 걸친 자기혹사, 고통의 끝에, 놀랍게도 증오와 원망의 감정이 수용과 용서 자기반성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감과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들, 비전에 대한 생각들이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03:37 을 가리키고, 이미 트랙을 십여번 돌은 뒤였다. 대략 12 ~ 13km 정도를 달린 시점,문득 트랙을 벗어나고 싶어 한적한 시골 도로구석을 따라 달렸다.
이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다. 평소의 3배 이상을 뛰고 있었고 초반부터 폭포처럼 흐르던 땀이 지금까지도 똑같은 수준으로 거침 없이 흐르고 있는 탓에 고개를 들면 땀방울이 시야를 가려 제대로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흥분 상태로 긴장한 근육과 쏟구치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한 열감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놀이를 몇 시간 한 것 그 이상으로 땀이 온 몸을 적셨음에도 그것이 찝찝하거나 불쾌하지 않고 어떠한 훈장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
16km 를 달린 시점, 기존이었다면 절대 도달하지 못했을 지점에 다다르자, 자기 반성과 명상의 철학은 끝나버렸다. 몸을 뜨겁게 달궈주는 아드레날린도, 카페인의 효과도, 확실했던 동기도 마찬가지로 이젠 모든게 흐려지는 시점이었다. 아무런 준비나 예행없이 시작해, 달린 시간이 벌써 1시간 3~40분 가량을 지난 상태였다.
진짜 자기 한계와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 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꾸준하게 움직이면서도 휴식을 갖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복 때 찾아오는 근육통이 찌릿하게 올라오고, 이따금씩 근육의 이완 수축이 제멋대로였으며, 호흡은 너무 거칠어지다가 안정되기를 반복하며 엉망이 되었다. 더이상 물통의 물은 남아있지 않았으나 여전히 몸에 너무 많은 수분과 염분을 잃어가고 있었을 뿐더러 기분 나쁜 습도는 철저하게 내 의지를 갉아먹고 있었다.
완전한 한계점에 다 다랐을 때,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처음 출발했을 때 했던 다짐은 180도 뒤집혀 희미해지고 "왜?"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거나 대충 타협하려는 생각, 머릿 속의 편함을 추구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협상가와 대화하는 순간 발은 멈추게 된다.
삶에 있어 저 질문에 멈췄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전에 포기한 적이 얼마나 되던가 그 후회와 선택들로 인해 좌절스러웠던 그 순간들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고갈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저런 악에 받치는 생각들이라도 분노로 태워 에너지로 사용해야만 했다.
질문에 확실한 대답이 공란으로 비어있는 와중, 유일하게 단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수분을 보충하든 잠시 쉬어가던 어떤 이유던 간에 지금 멈춰서면 다시 뛸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 멈추는 것은 다시 뛰는 것 뿐만 아닌 모든 도전과 가치로부터의 재기에 대한 불확실성과 직면하는 것이라 여겼다.
첫 1시간 30~40분 보다 마지막 30~35분의 5km 러닝이 더 버겁고 힘겨웠다. 스스로의 한계점이라 여겼던 거리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려는 발버둥은 항상 그 전의 익숙함보다 배로 힘든 법이다.
04:37분, 목표 했던 거리와 시간보다 더 뛰고 나서야 멈춰섰다. 칠흑 같은 새벽의 고요함이 나와 내 성취를 다독여주는 듯 했다. 2시간 10분에 가까운 러닝이 끝난 뒤의 개운함과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은 정신은 그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해방감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운동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 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생각보다 정신적인 영향이 크다. 고통은 성장을 남기고 고독은 성찰을 던진다.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새벽이었다.